약국 조제보조 일이 개꿀이라고 해서 혹해서 갔는데, 진짜 인생 최악의 선택이었다. "에이, 뭐 설마~" 했던 내가 너무 철없었다. 딱 3개월 버티고 나왔는데, 손목이 남아나질 않더라. 아직도 손목에서 ‘왜 나한테 그랬냐’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주 6일 근무부터 시작해서 망했다.
거의 모든 약국이 토요일은 기본으로 나가고, 격주? 웃기고 있네. 나 다 나갔어. 공휴일은? 안 쉬는 데가 태반이다. 내 개인 시간이 그냥 싹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쉬는 날 집에서 퍼져 있는 게 소원인데, 그럴 틈도 없으니까 인생이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손은 진짜 내 손이 아니었다.
약품 만지면 손이 다 상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상상 이상이었다. 핸드크림 바르고 싶어도 미끄러워서 약 봉투를 제대로 못 끼우거나 약을 떨어뜨릴까 봐 못 바른다. 그 와중에 약 봉투 끼우다 보면 손톱 다 나가고, 가끔 뜯을 때 손가락 베이고...
아, 정말. 그래서 내 손이 지금은 거의 중고 가죽 느낌이다. 누가 보면 무슨 목장에서 일했나 할 정도야. 조제보조라고 해서 단순히 돕는 줄 알았지. 천만의 말씀. 난 조제보조로 들어갔는데, 웬걸? 전산까지 다 시켰다. 처음 하루 이틀은 약품 이름이나 외우라고 하더니, 1주일쯤 되니까 “이제 좀 배웠으니 전산도 할 수 있겠지?”
하면서 바로 투입. 아니, 난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마치 내가 약사인 줄 착각할 지경이었다. 그냥 약국의 무슨 시다바리처럼 굴렸다니까?
하루 일과가 이랬다: 약사가 약 조제할 때 필요한 약들 다 꺼내서 세팅해줘야지, 약품 재고 체크하고 매일 발주 넣어야지, 물품 들어오면 그거 다 자리 맞춰서 정리해야지, 처방전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처방전 갯수 세는 것도 웃기는데, 뭐가 잘못됐나 하나하나 확인해서 엑셀에 다 입력해야 했다. 어쩔 땐 청소까지 시키더라. 나는 조제보조로 왔지 청소 아줌마가 아니라고요! 게다가 근처에 병원이 많은 약국이면 그냥 끝장난다. 내가 있던 데는 소아과, 내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까지 풀셋으로 있었다.
환자들 줄이 끝도 없으니 약국 내부는 거의 전쟁터였다. 약 이름 외우는 건 애교다. 그 많은 약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사실 여기서 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점심시간? 웃기고 있네.
점심시간이 1시부터 2시라고? 그건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얘기였다. 손님들이 끊기질 않으니까 1시 20분쯤 돼야 밥 먹을 준비를 한다. 허겁지겁 먹는데 갑자기 손님 오면 다시 약 조제 도와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앉아서 밥 먹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밥 먹고 나면 “청소 좀 부탁해~” 하면서 청소도 해야 하고, 다른 할 일 다 하다 보면 점심시간 5분 남는다. 그리고 다시 전쟁터로 컴백이지.
결론: 그냥 하지 마라. 진심이다. 아무리 돈 벌고 싶어도 차라리 쿠팡 물류센터 뛰는 게 낫다. 빠르게 돈 벌고 빠르게 몸 상하고 딱 끊자. 약국 조제보조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곤함의 끝판왕이다. 뭔가 뿌듯할 줄 알았는데, 3개월 지나니까 내 삶이 뿌듯하기는커녕 점점 암울해지더라. 나? 이제 약국 근처만 가도 PTSD 올 것 같아서 도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