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작은 장난처럼 보였어요. 종이 뭉치를 던지거나, 의자를 살짝 빼는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민호의 행동은 더 심해졌습니다. 제 필통을 숨기고, 점심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저를 놀리고, 심지어 단체 채팅방에서 제 사진을 편집해 공유하기도 했어요.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이 두려웠습니다. 어떤 날은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 가지 않기도 했죠. 처음에는 무시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응하지 않으면 질릴 거야'라고요. 하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려다가 망설였어요. '일러바치는 아이'가 되는 것도 두렵고, 상황이 더 나빠질까 봐 걱정됐거든요. 선생님께도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민호가 더 화를 내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또래 갈등에 관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세 단계 전략'을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첫 번째 단계는 '기록하기'였습니다. 작은 수첩을 만들어 날짜, 시간, 장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적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나중에 이 기록이 정말 중요해졌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지지자 만들기'였어요. 용기를 내서 같은 반 소연이에게 상황을 털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소연이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다니기 시작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학교에 가는 게 조금 덜 무서워졌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가장 어려웠지만 가장 효과적이었어요. '직접 대면하기'였습니다. 소연이와 함께 민호에게 다가갔어요. 복도 끝, 다른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죠. 연습했던 대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민호야, 네가 나를 놀리고 내 물건을 숨기는 것이 장난으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너무 심해졌어. 이런 행동이 계속되면 내가 기록해둔 모든 사건을 선생님과 상담사 선생님께 보여줄 거야."
민호의 표정이 변했어요. 제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나 봐요. 그리고 제가 모든 것을 기록해두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민호는 조용했어요. 이틀째도, 삼일째도. 일주일이 지나자 민호는 오히려 교실에서 저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체육시간에 민호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미안해"라고 짧게 말했어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민호의 괴롭힘은 멈췄고, 저와 소연이의 우정은 더 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맞서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두려움에 맞서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괴롭힘은 절대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