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 전체에 걸쳐서 침략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썼으니 너무 겁내 하지 마시고 천천히 따라오세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선은 일본의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결국 일본이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한것입니다. 일본이 점령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남북한이 분할될 리가 없었겠지요. 일본이 물러가면서 소련은 북쪽으로 진군하고, 미국은 남쪽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남 에땅에서 자기들의 체제를 힘 겨루는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는 미국도 그렇고 우리 남한 정부도 그렇고, 북한과 합쳐진 단일 정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련과, 북한의 반대로 이것이 무산된 것입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지 않는 완충지대가 필요했던 것이고, 북한 입장에서는 어찌 되든 공산주의 정권은 본인들이 잡아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유엔(UN)은 1947년 2차 총회에서 통일된 한국 정부 수립을 위해 총선거를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소련의 반대로 이 선거는 막혀버리고 북한과 남한이 각자 선거를 하여 2개의 정부로 나뉘어 버립니다. 물론 북한은 선거조차 하지 않았지요.
이렇게 나뉜 2개의 정부는 서로를 헐뜯다 마침내 북한의 1950년 6월 25일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한반도를 적화통일 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초반에는 많이 밀리다가 미국의 도움과 UN의 도움으로 파죽지세로 평양을 넘어 북쪽 끝까지 거의 다다랐을 무렵이었습니다. 이제 곧 통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중국의 공산당군. 중공군이 꽹과리를 치면서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의 인구가 얼마나 많습니다. 아무리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저글링이라고 해도 시즈탱크로 아무리 포화를 쏟아내도 역부족입니다. 결국엔 인해전술에 밀려 남으로 남으로 다시 또 밀리게 되다가 부산까지 함락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위대한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인해 다시 또 남한 전체를 회복하였습니다. 그렇게 38선에서 매일매일 의미 없이 죽어나가는 청년들은 뒤로한 채, 땅 한치라도 더 갖겠다는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욕심에 꽃다운 아까운 젊은이들만 죽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기나길게 3년을 이어가다가 끝나고,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양국의 경제만 박살 나고 일본만 좋은 일 시키고 어이없게 끝나게 된 전쟁이었습니다.
일본이 6.25 전쟁에서 좋았던 이유: 그 당시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으로써 전쟁에 지고 경제가 완전 박살 나있는 상태였는데, 한국과 북한의 전쟁으로 인해서, 남한에다가 전쟁 물자를 엄청 팔아먹어서 살아남.